교통사고합의서 쓰는 방법과 서명 전 확인할 것

사고가 나면 현장에서 합의서부터 쓰자는 말을 듣는 운전자가 있습니다. 제가 교육할 때도 ‘돈을 받았으니 끝난 줄 알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그런데 합의서에 적힌 한 문장이 치료비나 수리비를 더 청구할 수 있는지에 영향을 줍니다. 서두를 일은 아닙니다.
합의서보다 사고 조치가 먼저입니다
사람이 다쳤거나 차량이 손상됐다면 즉시 정차해야 합니다. 도로교통법 제54조는 부상자 구호 등 필요한 조치와 피해자에게 성명·전화번호·주소 등 인적 사항을 제공할 의무를 정합니다. 현장에서 합의했다는 이유로 이 의무가 없어지지 않습니다. 다친 사람이 있으면 상태를 확인하고 구조 요청과 사고 신고부터 하세요. 차량 위치, 파손 부위, 신호와 노면 상태도 안전을 확보한 뒤 사진으로 남겨야 합니다.
그다음 보험사에 사고를 접수하고 사고번호를 받아 두는 편이 좋습니다. 목이나 허리 통증은 현장에서 가볍게 느껴져도 이후 진료가 필요해질 수 있습니다. 치료 범위를 모르는 상태에서 ‘향후 일체의 청구를 하지 않는다’고 쓰면 분쟁이 커집니다. 특히 상대가 현금 지급을 조건으로 즉석 서명을 재촉한다면, 먼저 무엇을 합의하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민사 합의와 형사 합의는 범위를 나눠 쓰세요
민사 합의는 치료비, 휴업손해, 위자료, 차량 수리비처럼 손해배상 범위를 정하는 일입니다. 형사 합의는 피해 회복과 처벌에 관한 피해자의 의사를 수사기관이나 법원에 전달하는 일입니다. 한 장의 교통사고합의서에 두 내용을 모두 담을 수는 있지만, 어느 돈이 어떤 목적으로 지급되는지 분리해 적어야 합니다.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는 운전자의 업무상과실치사상에 대해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규정합니다. 다만 부상 사고에는 피해자의 명시적인 처벌불원 의사나 보험 가입에 따른 공소제기 제한 규정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신호위반, 중앙선 침범, 횡단보도 보행자 보호의무 위반 등 법에서 정한 예외, 사망 사고, 중상해 사고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런 경우 합의했다고 형사절차가 자동으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처벌불원 의사가 양형에 반영될 수 있는지와 공소제기를 막는지는 구별해야 합니다.
형사합의금도 이름만 적어서는 부족합니다. 이 돈을 민사 손해배상금의 일부로 지급하는지, 별도의 위로금으로 지급하는지에 따라 뒤의 보험금·손해배상 계산에서 다툼이 생길 수 있습니다. 대법원 판례에서도 합의금의 성격과 문구를 따져 판단합니다. ‘형사합의금 500만 원’이라고만 쓰지 말고 지급 목적과 민사 청구에 미치는 범위를 양쪽이 같은 뜻으로 이해한 뒤 적으세요.
교통사고합의서에는 이 항목을 빠뜨리지 마세요
- 사고를 특정할 정보: 발생 날짜와 시각, 장소, 차량번호, 사고 당사자의 성명과 연락처를 적습니다.
- 합의 당사자: 운전자와 피해자가 누구인지 확인합니다. 대리인이 서명한다면 대리 권한도 확인해야 합니다.
- 합의 범위: 인적 피해인지 차량·물건 피해인지, 민사 손해배상인지 형사 합의인지 구체적으로 적습니다.
- 금액과 지급: 합의금 총액, 이미 지급한 금액, 남은 금액, 지급일과 방법을 적습니다. 계좌이체 내역도 보관합니다.
- 남겨 둘 청구: 치료가 진행 중이라면 향후 치료비나 후유장해 등 아직 확정되지 않은 손해를 어떻게 다룰지 명시합니다.
- 처벌 의사와 서명: 처벌불원 의사가 있다면 그 뜻을 분명히 적고, 작성일과 당사자 서명을 남깁니다. 각자 서명한 사본을 보관합니다.
예를 들어 차량 수리비만 합의했다면 ‘이 합의는 차량 수리비에 한정하며, 인적 피해에 관한 사항은 포함하지 않는다’처럼 범위를 좁혀 쓸 수 있습니다. 반대로 모든 손해를 끝내기로 했다면 포함되는 항목과 지급 완료 시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모든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짧은 문장만으로는 서로 생각한 범위가 달랐는지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서명과 제출은 지급 내용을 확인한 뒤에 하세요
첫째, 진단서와 수리 견적, 보험사의 보상 내용을 확인합니다. 둘째, 합의금과 그 돈이 충당되는 항목을 맞춥니다. 셋째, 입금일과 서명일을 확인하고 양쪽이 같은 내용의 합의서를 보관합니다. 형사사건이라면 처벌불원 의사를 적은 서류를 담당 수사기관이나 법원에 제출했는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상대에게 합의서를 건넨 것과 사건 기록에 제출된 것은 다른 일입니다.
민법 제731조부터 제733조까지는 당사자가 서로 양보해 분쟁을 끝내는 화해의 효력을 정합니다. 그래서 이미 다투던 손해를 합의한 뒤 단순히 예상과 달랐다는 이유만으로 되돌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특히 치료가 끝나지 않았거나 후유증 여부를 모를 때는 청구 포기 문구를 서둘러 넣지 않는 게 안전합니다.
제가 운전자를 가르치며 강조하는 건 사고 직후의 속도보다 순서입니다. 사람을 먼저 살피고, 사고 내용을 남기고, 보상 범위를 확인한 다음 서명해야 합니다. 교통사고합의서는 사고를 빨리 덮는 종이가 아니라 양쪽이 무엇을 해결했는지 남기는 기록이어야 합니다.
